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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싸구려 와인과 값비싼 디저트
셜록/존
G
베이커가 221B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존은 시트의
안락함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머리도 눕히지 않고 허리는 꼿꼿이 편 채 눈에는 잔뜩 힘을 주었다. 머릿속도 몸도
제발 잠을 자라고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지만 여기서 잠들었다가는 정말 기절해버린 듯 잠들 거 같아 온 정신을 집중해 잠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일주일이었다. TV며 신문, 인터넷을 뜨겁게 만든 연쇄살인범을 쫓아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며 정해진
시간에는 출근해 환자들을 돌봐야 했다. 가장 최근 이틀 동안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고 간간히 새우잠을 청한 것까지 계산해 보아도
4시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살인범을 잡기 위해 잠복한 순간부터 셜록의 놀라운 설명을 듣게 되었을 때까지는 흥분감에
피곤함도 몰랐는데 지금은 정신도 또렷하지 않고 기력도 하나 없었다. 존은 옆에 앉은 셜록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고 얼굴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후 보이는 포만감과 만족감 같은 것이 떠올라 있었다.
징한 놈.
존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 것들을 머릿속에 정리했다. 잠도 잠이지만 제대로 씻지도 못했으니 우선 씻자. 그리고나서 밥은... 아니
밥보다는 잠이 먼저야. 씻고 나서, 자고 일어난 다음에 식사를 하는 편이 좋겠어. 따뜻한 욕조 속에 몸을 담글 것만 상상해보아도
몸이 노곤노곤해졌다. 그리고 푹신한 침대! 무거운 머리를 파묻을 베개. 이런 것들 때문에 그래도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곧이야! 곧 잘 수 있어! 라는 희망감에 사로 잡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지어졌다. 아니, 지워졌다. 얼굴에서 미소가 싹 지워졌다.
주인
없이 조용한 플랫 안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이 뻔뻔하게 미소 짓는 마이크로프트 홈즈였기 때문이다. 마이크로프트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편안한 휴식은 물 건너갔다는 소리였다. 옆에서 자신의 형을 발견하고는 으르렁대는 셜록의 음성이 이를 더 확신시키고
있었다. 왜 하필 오늘 지금, 이 시간에, 이곳을 그가 방문했단 말인가! 존은 하늘을 원망하고 땅을 원망했지만 그렇다고 제 앞에서
고개 인사를 하는 마이크로프트가 마법처럼 사라지지는 않았다.
“또 뭐 하러 왔어?”
셜록은 톡 쏘아 말했다. 그의
얼굴에 만연했던 만족감은 어느 샌가 사라지고 쓰디쓴 약을 억지로 삼키게 해 원망과 불만이 가득한 7살 어린아이의 표정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셜록의 이런 홀대를 무시할 만큼 마이크로프트는 뻔뻔했고 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 얼굴 보니 좋구나”
그는 셜록에게 웃어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만큼 셜록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오! 닥터 왓슨, 정말 피곤해보이시는 군요. 괜찮으십니까?”
“네... 뭐 사건을 쫓아다니느라 며칠 잠을 못 잤더니...”
갑작스러운
형님의 방문에 놀라 잠이 좀 달아나기도 했지만 존은 손님에게는 친절해야 한다는 기본 예의를 갖춘 사람이었으므로 -그러나 사실
이도 반가운 손님, 예를 갖춘 손님에게나 해당되는 거지 이처럼 들이닥치는 불청객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온 힘을 쥐어짜 얼굴의
근육을 움직였다. 그가 존의 어색한 표정을 알아본대도 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지금이 최선이었다. 최선을 다 해 자신을 세뇌했다.
그는 곧 떠날 것이다. 그는 곧 떠날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마이크로프트의 방문들을 생각한다면 그는 언제나 용건만 해결되면
돌아갔다. 그의 용건이 무언지 몰라도 사람을 죽이라는 일만 아니라면 존은 OK할 것 같았고 그렇게 하려했다.
“그 일 안 해”
망할 존의 플랫메이트이자 자칭 자문탐정님만 협조적이었다면 말이다.
초를 쳐라. 초를 쳐!
미간의 작은 주름을 만들며 마이크로프트는 아직 설명도 하지 않았어라고 말했지만 셜록은 들어볼 필요도 없다고 대꾸했다. 아무래도 대화는 길어질 것 같았다. 존의 입에서 끙- 하고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제 막 사건을 해결하고 왔어. 나는 괜찮지만 존에게는 휴식이 필요해”
셜록은
마이크로프트 앞, 자신의 의자에 그를 상대하기 귀찮은 듯 털썩 앉으며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존은 그의 말 속에서 충분한
배려를 엿볼 수 있었고 살짝 감동한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그 감동이 채 2분도 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이크로프트, 네가 가져 온 일이라 싫어”
말하는
것이 꼭 7살배기와 다름없는 자문탐정은 자신의 의자 가까이 놓여있던 바이올린을 집어 들었다. 그의 형을 빨리 돌려보내긴 이미
완전히 물 건너갔다. 셜록과 살면서 존이 터득한 유일한 것이 있다면 안 될 거 같은 일에는 빠르게 포기를 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괜히 혼자만 초조해져 봤자 속만 상하고 불덩이가 일어 까맣게 홀랑 타 재가 되기 일쑤였다. 사람 마음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번번이 다짐이 실패해 왔지만 오늘은 달랐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존은 몸과 마음이 매우 지쳐있는 상태였고,
이럴 때는 만사가 다 귀찮아지기 마련이다.
“차라도...”
자신의 피로감도 좀 덜고 손님 대접도 하고, 어차피 셜록가의
형제들은 또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으로 시간을 낭비 할 테고 존이 그들을 중재해야 할 테니 그냥 마음을 비우고 차나 마시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존의 말은 커다란 발소리를 내며 급히 뛰어 들어와 문을 열어 재끼는 레스트레이드에 의해 묻혀버렸다. 그는
어디서부터 뛰어 왔는지 땀범벅이었고 숨을 거세게 몰아쉬고 있었다. 플랫에 있던 세 명의 눈이 모두 당연하게 경감에게 향했고 집중된
시선에 조금 부끄러운 듯 헛기침을 몇 번 했지만 쉽사리 숨을 고르지 못했다. 갑자기 누군가의 방문이 존을 매우 놀라게 했지만 그
누군가가 레스트레이드 경감인 것을 알았을 때 그의 머릿속은 오로지 What the!! 라는 말만 둥둥 떠다니고 얼굴은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경감이 그들의 플랫에 찾아올 일은 사건밖에 없었다. 그것도 저리 급하게 온 것을 보니 매우 위험하고 중한 일일
테고... 오! 셜록은 그런 일을 정말 사랑했다.
“벌써 새로운 사건이 터진 건가요?”
존은 경감이 아니라고 말해주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존의 질문에 레스트레이드는 곤란한 듯 뒷목을 쓰다듬더니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 좀 전 해결했던 사건과 같은 방식으로 죽은 시체를 한 구 더 발견했습니다. 아무래도...”
경감은 셜록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범인을 잘못 지목했거나 공범이 있었던 게 아닐까...”
흐려지는 말소리에 이어 찢어질 듯한 고음의 바이올린 소리가 플랫에 울렸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모두 귀를 틀어막았고 유일한 한 사람, 소음의 원인인 셜록 홈즈만이 말 그대로 경감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제 추리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특유의 낮은 음성이 더 낮아지고 음절 하나하나가 강조되어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이 그의 분노를 짐작케 했다.
“아니...그건 아니지만...그런데 어찌하면 좋겠나! 시체가 한 구 더 나왔는데 당연히 그리 생각 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허! 당신들이 생각이라는 걸 하긴 합니까? 어디로요? 손으로? 배로? 설마 심장으로 한다는 건 아니겠죠?”
새로
나타난 시체에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해보려 했지만 그게 셜록에게 먹힐 리가 없다. 셜록은 그의 말을 한껏 비꼬았지만 이는
전적으로 자신의 추리를 의심하는 경감의 태도에 기분이 상해서일뿐 이 새로운 변모는 확실히 자문탐정의 흥미를 끌고 있었다. 존은
셜록의 커진 동공과 약간 올라간 입꼬리를 보고 또 다시 밖으로 끌려가는 자신을 상상했다.
“어쨌든 자네가 직접 와서 확인해주게”
“그럴 겁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이번 사건은 우리가 오늘 새벽에 잡아들인 그 자의 단독범행이 확실합니다. 가지 존!”
“아니 잠깐!”
이대로
다시 끌려가나보다 했는데 의자에 앉아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마이크로프트가 입을 열어 셜록을 저지했다. 셜록은 여태껏 그의
존재를 완전 잊고 있었던 듯 놀라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고 형님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아직도 있었냐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어쨌든 존은 작은 희망을 갖고 마이크로프트의 말을 기다렸다.
“보아하니 범인은 이미 붙잡힌 거 같고, 시체도 도망갈 일이 없는 거 같은데 먼저 제 일부터 해결하기로 하죠”
“아니요 홈즈씨. 혹시 우리가 범인을 잘못 잡은 거라면 이건 매우 시급한 문제입니다”
“레스트레이드 경감! 이미 범인은 잡힌 게 확실합니다. 그리고 말했지 그 일 안 한다니까”
“두 사람 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르나본데 이건 안보문제요!”
마이크로프트는 단호하고 높아진 음색으로 말했다.
“저희 경찰이 지금 하는 일도 시민보호! 안보문제입니다!”
그러자 반발심 가득한 경감의 말이 뒤를 이었다.
“나는 국가안보에는 관심 없어!”
이제 셜록의 목소리도 화와 흥분이 담겨있었다. 게다가 그는 기과한 바이올린 소리까지 만들어냈다.
“셜록...제발 바이올린 좀...”
쏟아지는 말에 존의 머리가 지끈거려오는 데 바이올린 소리는 정말 신경을 박박 긁고 있었다. 그는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려 보았지만 전혀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셜록, 좀 더 네 능력을 제대로 유용하게 쓰도록 해”
“쓸데없는 참견이야. 내 능력은 이미 필요한 곳에서 잘 쓰이고 있어”
“그래서 갈 건가 말건가?”
“갈 겁니다. 간다고요! 가서 확실히 당신들이 생각한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지 보여드리죠”
“...필요한 서류들은 두고 가지”
“두고가봤자 그것들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거야”
“마이크로프트 홈즈씨, 저희 일에 양보 좀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안보에 우선순위가 있다면 당연 저희 일이죠. 경감님이야말로 양보하시죠”
세 사람의 말은 끊김이 없이 빠르게 쏟아져 나왔고 소리의 작은 틈새는 바이올린의 소음으로 메워졌다. 플랫 안은 정말 소음덩어리 그 차제였다.
그리고 순간 존의 머릿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가느다란 끈이 뚝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shut the fuck up!!!"
터졌다. 드디어 터지고만 것이다.
뇌에서
입으로 나올 말을 조절하기도 전에 말이 먼저 나와 버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자신의 정수리에 모이는 것을 존은 느꼈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로지 아파오는 자신의 머리에 미간을 꾹꾹 눌렀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적 속에 몇 분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창
너머 밝은 햇살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카우치 근처에서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멍청하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세 명의 얼굴에 다시금 울컥 화가 올라왔다.
“sit down"
본인도 모르게 존은 군 시절 말투로 그들에게
명령했다. 사실 그 말을 고분고분 들을 것이라 기대로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셜록이 군소리 없이 카우치 한 쪽 구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평소의 그라면 이렇게 소리 지르는 존의 말을 콧등으로 들었겠지만 매의 눈을 가진 셜록 홈즈는 그의 플랫메이트가 지금 말
그대로 빡친 상태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리고 오랜 관찰 생활을 해 온 결과 남에게 친절과 배려를 베푸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존처럼) 자기희생을 명예롭게 생각하며(존처럼) 강한 끈기를 가진 사람(바로 존 왓슨처럼!)이 참지 못하고 화가 났다는 것은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이었고, 이런 사람들이 화가 났을 때 그 반응이 그 누구보다 맹렬했다. 말 그대로 꼭지가 돌아버리는
것이다. 존은 모리아티를 만난 후로 항상 뒷춤에 총을 꽂고 다녔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어 하나뿐인 목숨 잃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지금은 얌전해질 타임이었다. 셜록이 생각한 것을 마이크로프트가 생각하지 못할 리 없었으므로 그도 얌전히 셜록의 옆에
앉았다. 다만 레스트레이드만이 항의의 의사를 밝히려 입을 열었다.
“sit down"
입을 달싹거리는 경감을 보고 존은 이를 갈며 말했고 그제야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았다.
세 명이 나란히 앉은 것을 보고 존은
“fine!"
이라고
한 마디하고는 부엌으로 사라졌다. 표정은 전혀 좋아 보이지 않아 칼이라도 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불안했는데 찻잔이 부딪히고
가스레인지를 점화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단순히 차를 준비하나보다. 네 잔의 홍차를 준비하는 존은 부산히 움직였지만 카우치에
나란히 앉아있는 세 명은 그야말로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듯 했고 어색해 죽을 맛이었다. 누구 하나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다. 존만이 이 침묵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무시하고 있는 건지 평소 손님을 대접하듯 따뜻한 홍차가
담긴 손님 찻잔을 각자 앞에 놓고 자신의 머그컵도 자신이 앉을 자리 앞에 두었다. 세 사람은 각자에게 주어진 차를 마실 생각은
하지 못하고 놓인 데로 내려 보고 있었다. 존 왓슨 선생이 그럴 리 없다는 걸 모두 잘 알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었다. 존은 자신의 눈치를 슬슬 보는 그들에게 아무 설명도 해주고 싶지 않았다. 차에 독 타지 않았으니 마시라고 말하기도
싫었고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 말하기도 싫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존이 이 침묵을 모르고 있는 것도 묵인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의자에 깊숙이 엉덩이를 밀어 넣고 앉아 손에는 따뜻한 찻잔을 쥐고 이 침묵을 즐기고 있었다. 10분, 아니
5분이라도 시끄럽고 정신없는 시간이 아닌 조용하고 안락한 시간이 필요했다.
창으로 따뜻한 아침햇살이 들어오고 아래층 카페에서
올라오는 커피 냄새가 고소했다.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작게 들려오는 말소리도 멀리서 지저귀는 새소리 같아 듣기
좋았다. 존의 입가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이 얼마나 좋은가. 만날 지지고 볶고, 서로 물어뜯고 비꼬는 소리가 아니라
긍정의 소리였다. 홀짝 거리던 차도 마지막 한 모금을 넘기고 그들의 찻잔을 보았다. 세 사람 모두 전혀 입에 대지 않고 멍청히
존만 바라보고 있었다.
존은 작게 한숨을 내리 쉬고는 플랫 문가에 서서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돌아가시고 나중에 다시 찾아주세요”
차를 마시며 마음이 진정됐는지 존은 평소의 존 왓슨으로 돌아가 있었고 그들을 쫓아내면서도 매우 정중하게 말했다.
셜록은 존의 말에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에 미소가 만연해져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래! 다들 이제 그만 가주시죠! 우리도 이제 쉬어야 합니다!”
잘하면
굴러가는 낙엽이라도 본 10대 소녀처럼 꺄르르 웃으며 손뼉이라도 칠 참이었다. 마이크로프트의 굴욕적인 표정이 그의 마음에 쏙 든
것일 테다. 셜록의 행동이 얄밉기도 했지만 사실 마이크로프트는 자신과 같이 큰 나랏일을 하는 사람에게 의사 선생이 왜이리
푸대접을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 그도 홈즈가의 사람인 것이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고 우위에 서기 위해서 비록 지금은
자존심이 상한다 하더라도 물러서야 할 때가 있는 법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이미 표정을 싹 바꾸고 웃으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럼 곧 다시 찾아오죠”
존은 고개를 끄덕여 인사말을 대신해 그를 배웅했다.
그리고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이번에도 뭔가 말하려 입을 달싹이고 있었다. 하지만 존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명백히 듣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그래도
말문이나 열어보자 했는데 역시나 존의 완고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도저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레스트레이드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몸을 돌려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다. 현관문 앞에서 문을 열기 전 찜찜한 기분이 가득한 얼굴로 잠시 뒤를 돌아
셜록을 보고는 전화하겠다 말하고 밖으로 사라졌다.
셜록은 경감의 말에 뚱한 표정이었다가 외부인이 빠져나간 플랫을 돌아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좀 조용하군”
웃으며 존을 다시 보았을 때 셜록은 의아했다. 불필요한 것들을 다 내쫓았음에도 자신의 플랫메이트는 플랫 문가, 그 자리에 미동도 없이 계속 서 있었다. 표정도 전혀 기뻐 보이지 않았고 뚫어져라 자신의 얼굴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셜록은 불안해졌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손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자 아무렇지도 않게 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말도 안돼!”
셜록은 플랫메이트가, 그것도 존이 자신을 내쫓으려 한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어디까지나 나도 이 플랫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어! 자네는 나를 내쫓을 수...”
강력하게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려 했지만 존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팔을 잡아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등을 부드럽게 밀어 플랫 밖으로 몰아냈다. 당황했는지 제대로 저항도 못해보고 셜록은 플랫 문 밖으로 쫓겨났다.
“쫓겨내는 거 아니야 셜록”
말은 이랬지만 쫓아내는 거 맞았다.
“경감님께서 사건 마무리 해달라고 하셨잖아. 그거 끝내는 게 좋지 않겠어? 하지만 나는 너의 추리를 충분히 믿고 우리가 잡은 사람이 범인인 걸 의심하지 않으니 굳이 갈 필요도 없겠지”
뭔가 반박을 해야 하는데 또 맞는 말이라 입술만 삐죽거리고 있으니 존의 그의 팔을 쓰다듬으며 살살 달래주었다. 꼭 그 모습이 심부름 가기 싫어하는 아들을 달래는 엄마 같았다.
“앤더슨이 또 엉뚱한 소리를 한 게 분명해. 가서 잘 해결하고 와. 혹시 모르잖아. 가 있는 동안 흥미로운 새 사건이 들어올 수도 있고”
“흠...”
셜록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민하는 듯 했다.
“점심 때 돌아오면 같이 밥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놓지”
반박할 필요가 없다 판단이 섰는 지 자문탐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베이커가 221B를 떠나 야드로 향했다. 존은 이제야 안심한 듯 긴 숨을 내쉬고 비소로 웃을 수 있었다.
어릴 적 방학 때 어머니께서 왜 그리 자신과 해리의 등을 떠밀며 나가서 놀라고 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어린 애들이야 그래도 눈앞에 안 보이면 불안하겠지만 어쨌든 셜록은 성인 아닌가?
성인 맞지?
셜록
홈즈를 과연 성인이라 할 수 있을 까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알게 뭔가 그가 천재라는 것은 확실한대. 존은 아직까지 입고 있던
겉옷을 의자에 걸쳐두고 신발은 아무렇게나 벗어버렸다. 혼자 조용히 쉴 수 있는 많지 않은 시간이다. 목욕이고 밥이고 의사 선생은
카우치에 누워 잠부터 자기로 했다.
*** *** ***
사실
오랜 시간 잘 수 없을 거라고 존도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다. 셜록 홈즈는 몸은 어른이 맞지만 존을 고민하게 할 정도로
완전한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으니 분명 엄마를 찾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그가 직접적으로 엄마를 찾는 다는 건
아니고 주변 사람들이 그의 기행을 못 이겨 엄마 대신으로 존 왓슨을 찾았다.
왠만하면 무시하고 자려고 했는데 끈질기게
울려대는 휴대폰이 그를 가만히 두질 않았다. 받기는 싫어서 본능적으로 손에 쥐고 던져버릴까 했지만 아직 남은 할부금 생각에 그럴
수도 없었다. 안 떠지는 눈을 겨우겨우 떠 화면 윗 줄에 작게 떠 있는 시간을 보니 이제 2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의사 선생! 당장 이 괴물 데려가!!”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도노반 형사의 분노가 폭발하여 신경질적이고도 높고 큰 소리에 존은 잔신의 휴대폰을 귀에서 멀찌감치 떼었다.
“저...무슨...”
착 가라앉은 목소리를 겨우 끄집어냈지만 진짜 화가 많이 난 건지 여형사는 존이 화난 이유를 제대로 묻기도 전에 통화 연결을 끊어버렸다.
솔직히
말해 존은 가기 싫었다. 자신의 몸을 안락하게 감싸는 카우치를 벗어나 셜록의 뒤처리를 하러가는 것은 제 발로 불 속에 뛰어드는
나방과 같으니 말이다. 분명 도노반 형사가 독니를 숨기고 자신을 노려볼 것이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셜록 홈즈때문인 것을. 시간이 지체될수록 일만 커지고 열 받은 도노반 형사가 그의 머리에 총구멍을 낼 확률만 높아지니
존은 서둘러야 했다. 일어나 부엌 싱크대에서 물세수만 한 후 겉옷을 챙겨 플랫을 빠져나왔다.
「지금 야드로 가는 중. 야드 사람들 적당히 괴롭혀 J.W」
야드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씨알도 안 먹히겠지만 문자 하나를 날렸다. 보낸 지 몇 분 되지도 않아서 셜록에게서 답이 왔다. 이렇게 답이 빠른 거보니 딱히 흥미를 끄는 일이 없는 것이 확실했다.
「괴롭힌 적 없어. 그들이 멍청해서 스스로를 괴롭힐 뿐이지 S.H」
도착
전에 심심하다는 셜록의 문자 5통과 혹시 지금 올 수 있냐는 레스트레이드 경감의 조심스러운 문자 1통, 그리고 도노반 형사의
전화 2통 -물론 존은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이 존의 폰을 시끄럽게 했다. 그래도 서에 도착해 문을 열어주는 경비와 1층 홀을
바쁘게 오가는 순경들이 웃으며 인사를 하는 것이 확실히 오늘은 그나마 괜찮은 날에 속함을 확신시켜주었다. 존은 조금 안심하며
경력계가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도노반 형사의 성난 얼굴이 나타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고 비명을 지를
뻔하긴 했지만 뒤로 보이는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당장!”
그녀가 높은 음으로 입을 떼려하자 존은 그녀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네며 웃어보였다.
“셜록 데려 가려고 왔어요”
인상은 여전히 험악했지만 여형사는 아무 말 없이 존이 건네는 커피를 받았다.
커피를 사오길 잘 했다.
“회의실에 잘 가둬놨으니 당장 데려가세요”
존은 당연하다는 의미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실 유리벽 넘어 오만상을 하고 있는 셜록이 보였다. 회의실 안은 서류들이 한가득 쌓여있었는데 그가 하도 투덜거리니 입이라도 막아둘 참으로 미해결 사건 파일을 한무더기 준 듯 했다.
“셜록 더 있을 건가?”
셜록은 존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손을 휘휘 저었다.
“자네가 오면 갈 참이었어. 재밌는 게 하나 없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걸려있는 코트와 목도리를 집으며 말했다.
“존!”
레스트레이드
경감이었다. 회의실을 나와 그의 사무실 앞을 지나갈 때 그가 존을 불렀다. 셜록이 아니고 존을 부르는 경우가 좀처럼 없어 잘못
들었나 했는데 확실히 의사 선생을 지목하고 있었다. 셜록에게 잠시 기다리라 말한 뒤 그의 사무실로 들어가자 장소와 어울리지 않게
화려하게 포장된 상자 하나가 책상 위에 눈에 띠게 놓여있었다.
“하실 말 있으세요?”
존은 마주 너머에 앉아있는 경감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경감은 아주 잠깐 동안 순진하게 물어오는 존의 얼굴을 보며 이 남자가 몇 시간 전 자기가 입도 못 열게 했던 그 사람이 맞나 싶었다.
“아니 별건 아니고”
어색한 듯 레스트레이드는 헛기침을 한 번 내뱉었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내가 좀 무례하게 군거 같더군. 며칠동안 우리 일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 했을 텐데 말이야”
“이해합니다”
존이 아침에 화를 내긴 했지만 경감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그래서 웃으며 말 할 수 있었다.
“별거 아니지만 이거 가져가게. 나도 선물 받은 건데 보시다시피 지금은 마실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서”
책상 위에 놓인 상자는 조심스레 밀려 존 앞으로 옮겨졌다. 높이나 크기로 보아 아마도 와인인 듯 보였다.
“잘 받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새로운 사건인가요?”
“아니야. 셜록이 잡은 연쇄살인범에 대한 사건경위서 작성이 남았거든”
경감은 자리에서 일어나 존이 나갈 수 있도록 사무실 문을 잡아주었다. 셜록은 의외로 조용히 문 앞에서 존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존 얼굴을 보자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어 몸서리치는 게 눈에 뚜렷이 보였다.
“미해결 사건 중에 해결 조짐이 보이는 사건이 있었나?”
레스트레이드는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미간을 꾹꾹 누르며 지친 목소리로 셜록에게 물었다. 경감이 자는 모습을 존은 떠올려 보려했지만 자신들과
함께 사건에 뛰어들고 난 뒤 그가 자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런 경감의 질문에 셜록은 콧방귀 한 번 뀌고는 이미
당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범인을 잡은 경우가 대부분이니 걱정 말라고 비웃어주고는 앞서 나가버렸다.
저게 또 뭔 소린지 알 수가 없으니 존은 어깨나 한 번 으쓱였지만 옆에 서 있는 경강님의 얼굴은 퍼렇게 질려 있었다. 마냥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그는 레스트레이드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이고는 셜록의 뒤를 쫓았다.
건물을 벗어나는 그 짧은 시간을 못 참고 셜록은 존에게 서두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평소에는 물에 젖은 휴지처럼 축 늘어져 있으면서 이럴 때는 또 어찌나 빠릿빠릿한지 벌써 건물 밖에서 택시를 잡아놓고 존을 기다리고 있다.
“뭐가 그리 급해”
먼저 택시에 존이 올라탔다.
“싸구려 로즈 스파클링 와인?”
뒤이어 택시에 오른 셜록은 존의 팔에 안겨 있는 상자를 보며 짜증스레 말했다.
대답을 듣고자 한 말은 아니지만 일단 한숨 한 번을 내쉬었다.
“아침 일이 미안하시다면서 주시더군”
“싸구려에 선물 받은 걸?”
“싸구려인지 모르겠지만 선물 받은 거라고 이미 말했어 그리고 나는 기쁘게 받았고”
셜록은
그의 대답에도 여전히 불만 가득하게 존을 바라보았지만 더 이상 와인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 화려한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이 정확히 로즈 스파클링 와인인지 어떻게 안 건지. 상자를 이리저리 굴려 육면을 다 찾아봐도 이 안에 로즈 스파클링
와인이 들어있다는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14파운드짜리야”
새로운 정보에 존은 미간에 더욱 힘을 주었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너무 눈에 빤히 보이는 사실들이었다. 화려하지만 비싸지 않은 포장지와 장식품, 상자의 크기, 최근 특정
마트에서 세일했던 로즈 스파클링 와인, 포장지를 풀어보지 않아 경감도 보지 못했겠지만 작은 카드가 안에 들어있었다. 셜록은 쉽게
이것들을 설명해 줄 수 있지만 약간 귀찮기도 하고 기를 쓰며 추리해보려는 의사 선생이 귀엽기도 해서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그런데 서에서 경감님도 모르는 사이에 범인들이 잡혔다는 건 무슨 소리야?”
“말한 그대로야”
이제
상자에 대한 추리는 포기했는지 좀 전 말이 나왔던 미해결 사건에 대해 물어본다. 설명을 바라며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모습에
셜록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남들이 보면 표정의 변화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옅은 미소였지만 호기심 어린 존의
반짝이는 눈 때문에 속으로는 너무 좋아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존과 지내게 되면서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이런 감정들이 셜록을 더
신나게 했다.
“지난해에 뉴스며 신문에서 엄청나게 떠들어댔던 어퍼 스완덤의 살인사건 말이야”
“아! 그 사건 기억해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이상한 살인사건이었지”
“맞아.
바로 그 사건. 범인이 잡히지 않았는데 증거들과 증인들의 증언 기록들, 당시 용의자 리스트를 보니 범인이 딱 나오더군. 휴
분이라는 놈이었어. 그런데 참 재밌는 게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단순절도로 붙잡혀 지금까지 복역 중이더군. 또
빅토리아가의 방화 사건도 기억할 거야. 3건의 방화에 여자아이 한 명이 사망했지. 그 사건의 범인은 다른 지역 화재 현장에서
사망했더군”
“자료만 보고 범인을 알아낸 건가? 대단해!”
존은 정말 순수하게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그리고 천진하게 웃으며 자신의 추리를 칭찬하는 존을 보며 셜록은 2시간 전 상황을 되돌아보았다.
플랫에서
나와 야드에 갈 때까지 존이 왜 화가 났는지 자신이 어째서 지금 당장 야드로 가야하는 지를 곰곰이 생각했었다. 바보 같은
일반인들과 달리 위대한 셜록 홈즈는 깊은 사색을 통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이성적인 움직임만을 행했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존의 말과는 달리 자신이 쫓겨난 것이 너무도 분명했다. 이 분명한 사실에
셜록은 존과 함께 택시를 탔을 때까지도 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삐져있는 상태였고 어떻게 존에게 복수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정확히 존 왓슨이 그의 추리를 듣고 brilliant를 외치기 전까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경감님께 알려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단순절도면 금방 풀려날 텐데”
존의 말에 이번에는 누가 봐도 웃는다는 것을 알 정도로 셜록은 크게 미소 지었다.
“그는 절대 다른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미 죗값은 확실히 치렀고”
표정과 말로 보아 그 사건에 뭔가 더 있는 것 같았지만 이런 경우 셜록은 쉽게 말해주는 법이 없었다.
“이해를 못 하겠군”
택시는 베이커가 221B 현관문 바로 앞에 멈춰 섰다.
“그가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어떻게 호언장담하나? 이미 한번 살인을 저지른 놈인데”
벌써
차 문을 열고 택시를 빠져나가는 셜록에게 존은 자못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다른 범죄도 아니고 살인인데 어떻게 심각해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셜록 홈즈는 존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 지 범인의 석방에 대해 전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
사건은 이미 종결된 것이었고 지금은 그저 존이 어서 현관문이나 열어줬으면 할 뿐이다. 열쇠는 왜 갖고 다니는 지, 존과 함께
외출할 때면 그는 존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셜록 홈즈의 이런 행동이 가끔 그를 패주고 싶게 만들었지만
존은 이성적인 교양인이었으므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급히 택시비나 지불하고 인도에 발을 내딛었다.
“존 왓슨!”
그래도
자신이 그의 보모내지는 비서가 아님을 각인시켜주기 위해서 불만들을 작게 내뱉으며 열쇠를 찾고 있을 때 존은 자신을 부르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에 매우 본능적으로 뒤돌아보았다. 택시는 벌써 떠났고 그 자리에 창문이 완벽하게 코팅된 검은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약간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는 것은 언제나 순간이다.
“안시아씨”
뒷좌석의 코팅된 창이 내려가자 오늘도 시커먼 정장차림에 차가운 인상의 미녀, 안시아의 얼굴이 보였다.
“무슨 일...”
차창 가까이로 걸음을 옮겨 자신을 찾은 연유를 채 전부 내뱉기 전에 안시아는 잘 포장된 상자 하나를 그에게 들이밀었다.
“저희 보스께서 드리는 거에요”
“저에게요?”
의아해하는 존의 물음에 그녀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몇 초간 존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네”
하고
깔끔하게도 말했다. 결코 차갑고 딱딱한 음성은 아니었다. 오히려 밝고 가벼웠다.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긴 했지만 존의 기분을
상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표정만은 그가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이게 뭔데요?”
“최고의 제빵사가 만든 최고의 디저트 음식들이요”
그녀는 입무 완수를 보고하는 지, 존의 질문에 대답하는 동안에도 눈과 손이 스마트 폰 화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마이크로프트가
그들의 플랫으로 선물을 보낸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다만 존 개인에게 보내 온 적은 없었고 대부분 셜록에게 보내 온 것이나 가끔
둘 앞으로 보내왔었다. 존은 자신이 그에게 이런 것을 받을만한 이유가 전혀 떠오르지 않아 매우 의아했다.
“메시지가 있어요”
업무 보고가 끝났는지 멀뚱히 차 밖에 서 있는 존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긋 웃는다. 그녀의 말에 그는 상자 안에 물건이 상할까 조심스레 상자를 살펴보았고 바닥에서 손바닥만한 카드를 찾아냈다.
“아 여기...”
카드를 흔들어 보이며 고개를 들었을 때 존의 앞에 서 있던 검은 차는 사라지고 없었다. 가면 간다고 말 좀 해주지 항상 갑자기
찾아왔다 갑자기 사라져 사람을 멋쩍게 했다. 어쨌든 손에 들린 카드를 펼쳐보니 마이크로프트와는 어울리지도 않는 사과의 글이
적혀있었다. 아침에 자신이 의사 선생에게 본의 아니게 무례했던 거 같다. 사과의 의미로 보내니 받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편지를
마이크로프트, 본인이 쓴 것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장은 ps로 셜록에게 부탁했던 문제의 자료를 보내니 그를 설득해 달라는
것뿐이었다.
“뭐래?”
셜록은 존에게서 디저트 상자를 건네받으며 물었다.
“아침에 부탁했던 일 생각해보래”
셜록은 먼 곳을 바라보며 무심한 태도를 일관했다.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명백한 거부의 행동이었다.
“그리고 아침에 자신이 무례했대. 사과한다는 데?”
잠겨 있던 문이 열리면서 철컥 소리를 냈다. 평소에는 문 열리는 소리만 나면 먼저 문을 열고 그 꼬챙이처럼 기다란 몸을 미끄러뜨리며 잽싸게도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지금은 가만히 존을 내려다보고만 있다.
“마이크로프트가?”
“놀랍지? 사실 내 행동도 예의 바랐다고 할 수 없어서 다들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존은 어깨를 으쓱였다.
“......형의 사과는 순수하지가 못 해. 그건 사과라고 할 수 없지”
“어찌됐든 정말 그가 이렇게 선물까지 보내올 줄은 몰랐는걸. 그러니 받아들여야지. 너도 설득해보고 말이야”
문고리를 당기는 셜록의 이마는 힘이 들어간 눈썹 때문에 주름을 만들었다.
“그런데 너는 뭐 없어?”
앞서 들어가던 그는 존의 물음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뒤돌아보았다.
“뭐가?”
“사과의 선물...아! 아니다 너는 고마움의 선물을 줘야지. 내가 잠도 안 자가며 사건을 쫓아다녔잖아”
“병원을 그만둬”
“셜록!”
그는
가끔 존이 힘들어 투정 아닌 투정을 하면 어찌된 영문인지 병원을 그만두라는 답을 내놓았다. 도대체 어떤 사고를 통해 그런 답에
도달했는지 몰라도 경제적인 활동이 필요한 존 왓슨에게는 좋은 답이 아니었고 이는 존이 단호하게 셜록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이 문제가 다시 언급된 것이 못마땅한 듯했지만 존이 어떻게 받아들이건 셜록은
진심으로 그가 병원을 그만두었으면 했다. 본인이 이리 끌고, 저리 끌고 잠도 안 재우고 식사도 제대로 안 챙겼지만 존의 건강을
항상 걱정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약간의 독점욕과 지배욕도 포함되어 있었다.
셜록은 크고 동그란 귀여운 눈에 고집스럽게 다물고 있는 입술을 내려 보았다.
현관문이 완전히 닫혀있지 않았지만 길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가 존의 목 뒤편을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감싸 자신에게 끌어당기고는 고집스러운 입술에 살짝 입 맞추었다 떼어냈다.
“됐지?”
적잖이 당황한 존은 우선 재빠르게 문부터 닫았다.
“어?! 뭐가 됐다는 거야?”
“감사의 선물”
뻔뻔하고도
능청스럽게 셜록은 입맞춤의 의미를 설명했다. 예의 그 뚱한 표정이었지만 존은 셜록이 자신에게만은 거짓말을 하는 대신 숨기면
숨겼지 입을 열었을 때는 진심과 진실만을 말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끔 그가 말하는 진심과 진실이 심장 한 구석을
따끔거리게도 만들고 당황하게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자신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고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지도 알 수 있었다.
존은 아침에 일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행복이 충만해지는 이 순간에 미소 지었다. 지금 당장 그를 끌어안고 진하게 키스해주고 싶었지만 뺨에 입맞춤을 돌려주는 것으로 자신을 자제시켰다.
“어쨋든... 새로 발견된 시체는 뭐였던 거야?”
싸구려 로즈 스파클링 완인과 어울리지 않는 비싼 디저트 음식.
그리고 연인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
그들의 하루는 이제 막 시작되었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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